모친상을 당했으나 주변에 알리지 않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조용히 장례를 치른 이경규 씨.
그리고 그와 함께 예능에 몸담았던 많은 관계자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그를 위로했는데요.
워낙
이경규는 오랫동안 연예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부산에 간 사람들 중에는 지상파 3사 예능 PD들이 모두 모였다고 들었다.
이윤석, 윤형빈은 이경규와 함께 부산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강호동과 이영자가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왔을 때 이경규는 그들을 보고 “왜 왔느냐? “빨리 가세요” 하고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이 광경에 주변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샌드박스 난동으로 유명해진 강호동이 개그맨으로 변신한 데는 이경규가 큰 역할을 했다.
그를 MBC 특집 개그맨으로 데뷔하게 만든 사람은 이경규라는 거물이었다.
당시 이경규의 위치는 ‘규라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대했고, 이경규는 ‘방송 안 하면 옷을 벗겠다’는 말에 감동했다. 강호동의 레퍼토리 중 하나인 방송 진행을 망설였다는 것. 거의 그렇습니다.
결혼식
이경규는 강호동에게 직무 수행을 부탁할 정도로 그의 정신적 조력자였음이 틀림없는데, 이경규는 왜 여기까지 온 강호동과 이영자를 보낸 것인가? 부산 그냥 떠날까?
주한미군 통영통역관이었던 이경규 신부가 별세하여 국립영천애국회관 축령당에 안장되었다. 그의 어머니도 국립영천애국회관 축령당에 안장됐다.
어머니의 죽음은 부산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했다는 이경규의 고백은 그의 인간성과 품격을 보여준다.
“녹음이 없는 날 어머니가 소풍을 가셨다니 기쁘네요.”라는 그의 엄숙한 말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다.
이경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뿌리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고향을 잃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는 고아입니다. 너무 외로워서 돌아볼 때마다 생각이 나요.”
이경규는 “촬영 일정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도 지켜볼 수 없었다”며 “아버지가 60세쯤에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어머니도 20년 동안 침대에 누워 계시며 큰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
이어 그는 “엄마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봤는데 왠지 마지막인 것 같아서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이예림 딸은 이경규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고, 이경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방송을 녹화했다”며 방송인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수락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어
이예림은 “어른들이 ‘결혼식처럼 큰일을 앞두고는 장례식을 가지 않는다’라고 하셔서 할머니 장례식을 못 갔다”라며 “그냥 갔으면 어땠을까 싶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라고 말했는데요.
이경규는 “예전에는 부산에서 전화 오면 안 좋은 일이 있겠다 싶어서 조마조마했는데, 이제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런 게 없다. 그런데 어딘가 먹먹할 데가 있다”라고 털어놓았죠.
이예림은 “할머니한테 아빠는 어떤 아들이었냐”라고 물었고, 이경규는 “좋은 아들이었다고 할 것 같다. 돈으로 근 30년간 계속 뒷바람까지 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는데요.
이경규는 부모님의 사진도 공개했는데, 생전 아버지가 미남으로 유명하셨다고 밝히며 미군 부대에서 통역을 하셨는데 미군들이 뽑은 가장 성실한 한국인으로 뽑혀서 군잡지 표지 모델도 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경규는 어머니 발인을 마친 다음날 자신과 형제처럼 가까운 후배인 윤형빈, 이윤석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이윤석과 윤형빈은 부산에 마련된 빈소를 3일간 지키며 이경규와 함께 했습니다.
이경규는 “주변에 연락을 안 하고 너희 둘만 부르려고 했던 것”이라면서 “너희가 심부름시키기도 좋다. 그리고 스케줄 한가하지 않냐”라고 특유의 농담 섞인 말로 고맙다는 말을 대신했죠.
이경규의 어머니는 생전에도 유명인 아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경규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안 하셨다. 날 보호해 주려고 그러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머니는 내 일에 대한 동기였던 것이다”라며 “어머니가 연세가 드셔도 내가 티비에서 활동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이다. 내가 일하는 것에 있어서 동기부여가 됐다”라고 덧붙였죠.
한편, 이경규는 “부모님을 잃는 게 어떤 슬픔인지 몰라 놀랐다”라면서 “어머니 영정을 보는데 미안하더라. 뭐가 미안한지는 모르겠는데 정말로 미안했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서 생활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산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종종 불길처럼 느껴졌어요. 나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직업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미안해요.
하지만 이경규가 공황장애로 투약을 받고 있다는 점, 심장 질환을 앓고 있어 신체적 건강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심혈관 질환으로 생사의 사투를 벌였지만, 빠른 치료로 위기를 극복했고, 관상동맥 스텐트 이식 수술을 받은 뒤 방송 중 과도한 야외촬영을 특히 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부(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이 일을 겪으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70세 이후에는 돈이 있든 없든 똑같아진다. 그는 “건강이 중요하다”며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래 섞기로 유명해진 강호동은 이경규의 도움으로 방송인이 됐다.
하지만 아무리 강호동이 이경규의 나무 아래서 보호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수요원으로서의 비난과 불만은 여전히 그를 쫓아다니며 고민을 안겨줬다.
특별대출은 낙하산과 같기 때문이다.
쉬운 시작은 아니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그의 진행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소나가’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초반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사라졌고.
특히 남에게 베풀기를 서슴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승민은 ‘니드롭 도사’에 출연해 농담을 하며 냉장고를 열성적으로 샀고, 돌봐준 매니저의 결혼식 축하 선물로 무려 1억50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동안 소속사 없이 지내온 그.
그뿐
아니라 유재석과 같이 찍은 CF 기금을 모두 복지시설에 기부한 것은 물론, ‘사랑의 리퀘스트’에도 5000여만 원이 넘는 엄청난 성금을 기부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런 큰 통뿐 아니라 그는 은근히 세심하고 섬세해서 방송에 들어갈 때는 쉴 틈 없이 대본을 읽고 할 말을 대본에 첨가하는 등의 꼼꼼함을 가지고 있는데요.
‘황금 어장’에서 그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김성주는 ‘강호동의 방송을 보면 치열함이 느껴진다’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죠.
이경규는 과거 아버님 부고 기사가 나니까 너무 많이 오셔서 미안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조용히 보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소식을 듣고 강호동과 이영자가 장례식장을 찾아왔으며 이경규는 이들을 보자마자 ‘왜 왔어 지금 얼른 가’라고 했다고 하죠.
그는
‘미안하니까 정말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라며 ‘부산이 가까운 곳도 아니고 연락도 안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라고 전했죠.
이경규는 언제나 유쾌하고 강인해 보였던 국민 MC죠.
딸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은근한 딸 바보의 모습까지 보여줬던 이경규가 이번에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한 사람의 아들로서의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이경규는 ‘미안함을 갚을 길은 열심히 활동하고 열심히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아하실 것 같다’라고 감정을 추슬렀습니다.
이경규 씨 바람대로 오랜 세월 대중들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웃음 안겨주는 개그맨으로 남아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