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세 김종국 아무도 예상 못한 충격적인 소식… “하나뿐인 어머니의 안타까운 상황..” 평생을 효도하면 뭐하나..

1976년 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종국은 아버지가 직업군인 출신의 월남전에도 참전한 국가유공자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근검절약은 기본이고, 조금만 어긋난 행동을 해도 불호령이 떨어지는 군기 잡힌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너무 무서워서 친척들이 조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휴가 때마다 감옥에 가듯이 김종국 집에 보냈다. 하지만 김종국의 훗날 증언에 따르면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쨌든 김종국은 젊었을 때 싸움을 잘했다.

어느 날, 당시 집안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김종국이 가수가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극도로 반대했고 집안은 혼란에 빠졌지만 김종국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고집이 강해서 절충해서 6개월만 해보고 안되면 가수를 하겠다는 조건으로 공부를 하겠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김정남을 지하로 데려가기 위해 노동자들이 동원됐고, 김종국도 지하로 끌려갔다.

 

이처럼

당시 소속사는 돈에 눈이 멀어 혹사만 한 게 아니라, 아무리 90년대임을 감안해도 용인되기 어려운 손찌검까지 이어졌고 손찌검의 이유로는 음식을 남기거나 식당에서 메뉴를 추가로 주문하거나 서로 조금이라도 언성을 높이거나 심지어는 다리를 떠는 등의 별의별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 트집을 잡은 후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방법들로 손찌검을 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멤버 김정남과 김종국은 당시 소속사 공동대표 권승식, 김광수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고 했고, 심지어 아무 잘못을 안 해도 대표들의 그냥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멤버들에게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과정에서 아무 잘못도 없는 ‘터보’ 멤버들이 괜히 검찰 수사라고 하니까 겁이나 행여나 조사를 받으면서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 때문에 역으로 본인들이 피해를 받을 걱정에, 백댄서의 차를 타고 도주하게 되는데 무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심지어 외국까지 가서 도피 생활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로 인해 ‘터보’의 커리어에 있어 손해 본 것들이 많았는데, 당시 ‘터보’의 인기가 한창이던 시절이라 각종 연말 가요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 후보까지 올랐으나 거주로 인해 모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당시 검찰은 ‘스타 뮤직’에 대한 수사에 나서게 되어 결국 소속사 대표 권승식과 ‘터보’의 매니저 관계자 등 ‘스타 뮤직’의 관련자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검거되었고, 하지만 공동대표 두 명 중 권승식은 검거됐지만, 나머지 한 명은 수사망에는 올랐으나 잡아넣지를 못했는데, 이 인물이 바로 가요계의 최악의 인물이자 훗날 ‘미스 트롯’을 제작한 김광수였습니다.

아무튼 그로부터 약 1년 ‘터보’의 김종국, 김정남은 다른 소속사로 이적하려고 하던 중 마침 어떤 다른 기획사 대표가 그들에게 ‘각각 10억 원을 주겠다. 우리 회사로 오라’라며 유혹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장은 곧 ‘터보’를 대신해 수익금을 모두 훔쳐 도망쳤고, 이후 ‘터보’가 사기를 당하자 그의 전 소속사인 ‘스타뮤직’은 “당신이 사기를 당했으니 나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다시 오세요.” “언론에서는 그가 ‘스타뮤직’으로 복귀했다고 보도됐지만, 실제로는 늘 그렇듯 조폭들의 앨범을 내고 처벌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때까지 멤버 김정남은 1년 8개월의 활동이 너무 힘들어 ‘터보’로 복귀하지 않았고, 결국 밴드를 탈퇴하면서 당시 김종국에게 “아니요, 안 해요”라고 말했다. 다시는 노예의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후 마이키라는 멤버가 김정남을 대신해 터보에 합류했지만, 그때에도 소속사에서 자행한 똑같은 만행은 계속됐다.

나중에 Mikey는 Turbo에서의 활동을 회상하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당시 터보로 활동하면서 소속사로부터 가혹행위를 많이 당해서 누군가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떨렸고, 차 소리조차 누가 다치게 하는 것처럼 불안했어요. 나. 그 결과 나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울했습니다. “너무 심각해서 혈액순환이 안 되고 몸이 마비되고 호흡곤란이 생겨 병원에 갔습니다.”

 

심지어

당시 마이키는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사 직원들이 가짜 당일에 만행을 저질렀고, 어느 날 김종국은 마이키의 몸을 덮으며 저항했다. 국은 다시 지하실로 가서 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찔렀다. 이어 마이키는 김종국에게 너무 미안하고 미안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작곡가들에게 계속 부탁을 했으나 작곡가들은 여전히 ​​미안하다며 차라리 전 소속사와 오해를 풀고 싶다는 답변을 했다. 국은 용기를 내어 김광수에게 전화를 걸어 “섭섭한 건 알지만 내 동생을 살려달라”고 말했다.

김광수의 간섭으로 작곡가들이 곡을 전달하지 못해 김종국은 어렵게 첫 앨범 제작을 마쳤다. 하지만 이번에 김광수가 일부 방송을 차단하기 시작하자 정말 지쳐가며 가수로서의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의 간섭으로 인해 김종국 1집은 아예 홍보도 할 수도, 홍보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앨범이 무려 40만장을 팔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에 비해 당시 지상파 3사 모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임창정 8집의 판매량이 38만장, 김종국의 40만장을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판매량이다.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한다면 적어도 70만 장은 팔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의 1집 앨범은 활동을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웠고, 그런데 2004년 2집 앨범의 ‘한 남자’가 그야말로 초대박이 나면서 당시 음악프로 1위는 기본이고 연말 지상파 3사 모두에서 가요 대상을 받는 전무유무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그렇게 김종국의 2집이 크게 성공하자 마침내 김광수의 방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런데 김광수는 뻔뻔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하루는 그를 찾아와 자신의 소속사 가수들의 피처링을 해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아무튼 당시 상황이 맞지 않아 정중히 부탁을 거절했는데, 그런데 이에 김광수는 “네가 감히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냐”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했었고, 사실 이때 김종국이 바랐던 건 “그때 힘들었지 미안하다는 한마디만을 바랐다”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훗날 ‘강심장’이라는 프로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종국의 말을 요약하면 터보 시절의 기억이 본인에게는 정말 일만 주구장창했고 돈도 못 벌었고 고통을 자주 당했던 기억뿐이긴 하지만, 결과 음악이 남아있으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속내가 어떻든 이젠 털어버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 김종국의 참 모습과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종국은 “그러다가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겁이났다. 나는 부모님이 내가 준비될 때까지 나를 기다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어딜 가든 어머니와 동행했다”고 말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이어

“터보에서 승진하는 동안 어머니의 암 수술 소식은 수술 전날까지 몰랐다”고 말했다. 김종국의 어머니는 그의 활동을 걱정해 일부러 수술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패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종국 역시 “비용을 걱정하시는 아버지는 집에 계시도록 하겠다”며 “아버지 뜻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빨리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자리 잘 지켜주세요, 행운을 빕니다”, “종국 어머님, 빠른 쾌유를 빕니다, 건강하세요^^”, “건강하신 줄 알았는데 몸이 안 좋으시네요…. 빨리 쾌유하세요. “TV에서 꼭 보고 싶어요”라고 그들은 계속해서 응원을 보냈다.

한편, 김종국은 ‘마이 리틀 보이’, ‘런닝맨’, ‘옷자락이 날아다녀’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김종국 어머니 조혜선 출산 1947년, 올해 그는 76세이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의 아버지는 올해 81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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