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1번지’의 심형래를 보고 개그맨의 꿈을 키웠던 유재석은 1989년 ‘비바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어
1991년 스무 살의 나이에 KBS 대학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장려상을 받고 개그맨 7기 공채로 데뷔했다.
예상보다 빨리 꿈을 이룬 유재석은 이것이 진짜 인생의 시작인지 당시에는 몰랐다.
유재석은 데뷔 후 ‘유머1호’ 등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전혀 출연하지 않았다.
한편, 김국진을 비롯한 동급생들은 데뷔 후 인기를 얻으며 입지를 다졌다.
이로 인해 같은 반 친구들은 유재석을 세심하게 챙겨줬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방송에 대해 두려움이 생겼던 그는 계속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 시기에 유재석에게는 한 가지 소득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동아리’ 멤버들이었는데요.
그는 형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힘들었던 시절을 잘 버텨냈죠.
“형님들이 정말 저를 많이 챙겨줬어요”
1994년 12월 유재석은 방위로 1년 6개월간 군 복무를 하게 되는데요.
이때 입대 동기가 바로 드라마 ‘모래시계’의 인기에 힘입어 탑스타의 반열에 오르기 직전이었던 이정재였죠.
그리고 여담이지만 탑스타 이정재와의 에피소드는 제대 후에도 무명 개그맨이었던 유재석에게 아주 좋은 방송 소재였을 텐데요.
하지만, 그는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죠.
하지만
“자고 있는 저를 깨워서 들쳐 업고 차에 태우고 그리고 자기가 운전해서 또 광명시까지 갔죠”라고 이정재 씨가 유재석 씨와 함께 했던 일화를 공개한 적이 있죠.
1996년 6월 유재석은 소집 해제 후 단역으로 코미디 프로에 다시 출연하기 시작했고, 다음에 코미디 ‘세상만사’에 ‘남편은 베짱이’라는 코너를 통해 조금이나마 얼굴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꽁트에서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프로그램에서의 유재석은 여전히 방송 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한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요.
그랬기에
그럼에도 유재석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직도 일이 성과를 내지 못한 유재석은 포기하려던 중 오랜 은인으로부터 메뚜기 가면을 받았다.
“저에게 처음으로 메뚜기 가면을 씌워주신 분은 정말 저를 다양성으로 이끌어주신 분이셨어요. 제 인생을 바꿔주신 프로듀서 중 한 분은 김석윤 PD님이셨어요.”
이로써 유재석은 1998년 ‘오늘은 자유선언문’, ’60년을 이어가다’라는 제목의 코너를 조직하며 마침내 유명세를 탔다.
유재석은 1999년부터 예능 1~2회에 MC를 맡으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코미디 시리즈 ‘멋진 친구들’에서 당시 최고의 MC였던 남희석, 이휘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故 최진실의 추천으로 MBC ‘목표달성 토요일’ ‘스타챔피언’ 코너에 MC로 출연했다. 나는 명령을 받고 날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목표달성 토요일’에서 스타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은 유재석이 스타 대거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유일한 MC로 나선다.
하지만
당대 스타들이 총출동한 프로그램에서 그는 전체를 아우르는 기가 막힌 진행으로 국민 MC가 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지독하게 풀리지 않았던 20대를 끝내고 30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뜨고 나서 변했다는 정말 그런 사람이 안되리라고 다짐을 했던 유재석.
항상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솔직하고 성실하고 그런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걷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최고의 MC로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방송인 유재석과 김태호 PD가 ‘애증의 관계’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는 사랑과 미움 사이를 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사랑은 더 커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 사이의 역사와 업적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감정이 없으면 증오도 없습니다. 관심도 없는 사람을 미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합니다. 왜 사랑과 증오인가? 즉 ‘자강두천’, 즉 자존심이 강한 두 천재인 셈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직업이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연결될 수있었습니다. 김 경찰관이 만들고 유재석이 가지고 놀았다. 우리는 열띤 토론을 했고 결과를 얻었습니다. ‘무한도전'(2006~2018)부터 ‘시간을 보낼 때 무엇을 하시나요?’까지 (2019~2022)는 16년을 함께 보냈는데, 이 시기가 그들의 전성기와 일치한다. 이것은 또한 텔레비전 엔터테인먼트의 전성기였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학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무한도전’은 매주 목요일 녹화된다. 그러나 이것이 하루만 일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목요일 녹음에는 남은 날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는 완벽했습니다. 함께 활동했던 일부 멤버들은 재입장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의 에너지를 따라잡을 수 없다”, “너무 힘들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방송 관계자의 말을 듣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유재석은 김 PD가 떠난 뒤에도 “놀면 뭐 하느냐”고 계속 묻는다. 또한, ‘국민 MC’다운 성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열심히 활동 중이다. 하지만 김 PD는 그의 곁에 있지 않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놀면 뭐해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10% 안팎이던 시청률은 이제 3%대로 떨어졌다. 이는 TV를 시청하는 사람의 수가 점차 감소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은 훨씬 더 한심합니다. “놀면 뭐해요?” 더 이상 대화의 주제가 아닙니다. 오는 유일한 반응은 실망입니다.
이로
인해 제작진은 멤버 교체 및 재정비 기간이 있을 것임을 알렸다. 고정 멤버였던 방송인 정준하와 신봉선은 방송 종료 후 1월 10일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 MBC는 “2년 동안 함께한 정준하와 신봉선이 ‘놀면 뭐하니?’에서 하차한다”고 밝혔다. 10일 방송 이후. 6월 셋째주, 넷째주에는 방송을 쉬고, 개편에는 2주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그가 설명했다. 또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박창훈 PD가 물러나고, 공동 연출을 맡은 김진용 PD와 장우성 PD가 주연을 맡는다.
현 상황은 정말 ‘놀면 뭐하니’ 위기인가? 엄밀히 말하면 ‘유재석 위기’다. 그러나 이를 대중에게 알리는 대중과 언론은 드물다. 유재석의 노력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성과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을 보낼 때 무엇을 하시나요?”라고 다시 물어볼 기회가 생깁니다. 그런데 <놀면 뭐하니?>에서는 아직 김 PD는 없다. 이번 방송의 얼굴 유재석이 ‘아웃사이더’라면, 카메라 뒤에 앉은 김 PD는 ‘인사이더’였다. 김 PD의 실종으로 유재석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물론 이를 제작진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유재석이 배제된다면 ‘놀면 뭐하냐’는 질문을 폐지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제작진도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럼
유재석과 김PD가 다시 합쳐야 할까? 이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지만 결코 정답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재회한다는 것은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와 같은 수준의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을 다시 한 번 짊어지겠다는 선언이다. 전성기에.
하지만 유재석에게는 ‘또 다른 김태호’가 필요하고, 김 PD에게는 ‘또 다른 유재석’이 필요하다. 유재석은 당대 최고의 재능을 지닌 후배들을 적시에 활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무한도전’, ‘런닝맨’에서 하하가 활약한 것처럼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도 조세호가 활약했다. 이런 재능을 지닌 새로운 프로듀서를 발굴해야 합니다. 그런 가능성을 가진 PD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재석 같은 MC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PD를 찾고, 그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