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0년대 중후반 주말 저녁이면 황금 시간대의 드라마 여주인공을 연달아 맡으며 멜로의 여왕으로 군림한 배우 정애리는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폭넓은 연기력으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공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봉사와 선행을 펼쳐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배우로서 정애리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인생의 이야기가 호사다마라고 하셨나요?
실제로 정애리의 사생활은 이렇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한때 망가졌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두 번의 결혼 실패 끝에 고소를 당하고 결국 난소암에 걸린 배우 정애리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볼 예정이다.
1960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막내이고 집안이 꽤 부유해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워낙 성격이 좋았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한 이후로 집안이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가족은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왔고 큰집에서 살다가 작은 부엌 하나 딸린 단칸방에 육 남매가 살게 되었는데요.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평생 한 번도 나가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풍족하게 살다가 한순간 집안이 망한 뒤로는 환경미화원 일과 부업으로 봉투 붙이는 일을 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으며, 가족들 생활은 예전과 달리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애리 역시 막내로 태어나 사랑만 받고 자라다가 갑자기 변해버린 형편으로 인해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야 했으며, 당시 자신의 처지와 달리 놀고 있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한편, 어느 날 무용을 하던 그녀는 잠시 쉬고 있었는데, 셋째 오빠가 상금을 많이 준다며 KBS사 텔런트 시험을 권유했고, 그렇게 얼떨결에 나갔다가 대상으로 당선되었는데요.
이를 두고 정애리는 당시 우연이었다고 하지만 그녀가 이때를 계기로 45년의 연기 생활을 한 것을 볼 때 아마도 필연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19살의 나이로 신인 탤런트로 데뷔한 그녀는 초반에는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차츰 안정된 연기를 보이며 1984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진실’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순간 시청률이 70프로를 기록한 이 드라마의 인기로 그녀는 어딜 가든 정애리라는 이름보다 극중 배역으로 더 많이 불렸고, 게다가 당시 티비 가이드 탤런트 인기 순위를 보면 항상 1등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는데요.
이처럼 배우로서 정점에 있을 무렵, 갑자기 그녀는 결혼 소식을 전하며 배우 활동 중단을 선언합니다.
당시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부산에서 재벌 집안으로 유명했던 뉴욕제과 사장이고, 결혼 직후 배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데요.
그리고 이때 남편은 여전히 미국에 있다 보니 이때부터 두 사람을 둘러싼 각종 별거설과 불화설 등이 불거지게 됩니다.
하지만, 정애리가 결혼 7년 만에 임신을 하게 되며 이런 루머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 20년 만인 2005년에 이혼을 하게 되는데요.
이혼 사유는 오랜 별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이혼 사유로 변했다는 말이 얼마나 깊은 슬픔이던지 서로에게 사소한 상처가 쌓여 자연스레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편, 그녀는 젊은 시절 오랫동안 수많은 선행과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그러다 2010년 무렵 같은 교회에서 봉사활동하다 만난 사업가와 2011년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두 번째 남편의 인품이 너무 훌륭하고 자상하며 말도 차분하고 박학다식한 사람이다”라고 극찬했습니다.
하지만
3년 만에 우리는 다시 이혼했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말로 만남을 축하해 더욱 안타까운 소식이었지만, 당시 두 사람 모두 사기죄로 기소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은 더욱 컸다.
알고 보니 당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던 둘째 남편이 A씨로부터 지점 개설 대가로 5억 원을 받았으나 문제가 생겨 A씨가 투자금 환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A씨는 “이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갑자기 투자금을 빌린 돈으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했고, 상환 기한이 되기 전 태도를 바꿔 사기를 빌미로 형사고발했다. .
이때 두 번째 남편뿐만 아니라 정애리도 포함됐다.
당시 A씨는 “이혼 사실을 알았을 때 남편에게서 돈을 돌려받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고소하면 남편 때문에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타 이미지가 있어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미 이혼한 상태였고, 이혼하지 않더라도 부부별 소득제도가 있어서 남편이 남편의 일로 인해 아내의 재산을 압류할 수 없도록 한 행위에 불과했다. 배우자에 대한 압박. 그가 스타라는 사실을 이용한다.
이로써 두 번째 결혼도 끝났고, 안타깝게도 2016년 드라마 촬영 중 복막염 수술 중 난소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암이 1기여서 다음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항암치료가 불가피했고, 탈모가 생기기 싫어 미리 머리를 밀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항암치료를 견디기 위해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했고, 평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그녀도 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해서 매일 고기를 많이 먹어야 했다.
의학적 목적으로 한 끼에 지방 없는 마른고기를 100~200g씩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두 번의 결혼생활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쳤고, 암을 앓은 뒤 외모도 늙어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만나러 왔어요.
이 때문에 또 다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게 됐다.
최근 많은 네티즌들은 그녀의 ‘마을 여행지’ 출연에 대해 논의를 촉발했다.
올해
60세신 정애리에게 40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미모가 그대로입니다.
“피부가 반질반질하고 미소가 아름다워요” 등등의 찬사도 있었지만, “예전에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다 사라졌네요”, “피부가 본인 것이 아닌 것 같고 가면을 쓴 것 같아요” 등등의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었죠.
몇 년 전에도 그녀의 연기에 대해 많은 네티즌들이 “정애리 씨 표정 연기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우는 연기를 하는데 근육 움직임이 전혀 없어서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르겠어요” 등등의 의견을 내놓았는데요.
이런 부정적인 의견이 등장한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지난 결혼 생활과 투병 등으로 인해 상해버린 얼굴을 시청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얼굴에 여러 가지로 시술을 했고, 그로 인해 얼굴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아 표정 연기가 안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게다가
그녀에게 탤런트를 권유했던 셋째 오빠마저 암으로 4년간 투병을 끝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고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뭔가 깨달았다는 그녀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축복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삶이 축복과 가장 어울리는 조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99가지 좋은 일이 있어도 하나의 힘든 일만 있더라도 힘들다고 하니까 차라리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하루가 가장 축복받은 삶인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살다 보면 인생에서 힘든 일도 많고 그때는 도저히 저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어떻게든 오게 되어 있다. 물론 나도 하는 일이 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솔직히 사람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살겠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힘든 곡절도 많았지만, 오히려 속에서 삶의 진리를 깨닫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겠다는 정애리 씨.
어쩌면 과거에는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오히려 그녀의 삶의 경험이라는 소중한 교훈으로 남아, 되려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만들어준 지표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