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김보연 씨.
김보연 씨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시절이 있었는데 다들 기억하시나요?
그녀의 딸도 당시 하이틴 스타로 있을 때, 김보연 씨만큼은 아니지만, 엄마를 빼닮아 너무 예쁩니다.
그동안 김보연 스캔들이 인터넷으로도 많이 떠돌고 있고, 모 백화점 회장과 그런 스캔들이 일어나서 그 당시엔 많이 어렸고, 스트레스로 유학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엔 은퇴까지 생각할 정도로 김보연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는데요.
얼마 전 KBS에서 ‘승승장구’에 출연하여 과거 전성기 시절 수많은 우리나라 최고 재벌과의 스캔들로 연예계를 은퇴까지 고려했던 김보연 씨의 사연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연기자로서 익숙한 배우 김보연은 정규 앨범을 여섯 장을 발매했으며, 원래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죠.
배우를 하면서 김보연은 돈을 벌기 위해 밤무대에서 가수로 활동했는데, “밤무대는 내 직업 의식을 느끼게 해줬던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활동 때문에 결국 나중에 김보연, 정주영 회장 루머가 생기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보자.
이날 방송에서 김보연은 자신의 일일 야간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선배들이 밤에 공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들이 겉모습을 좀 보여줘야 하는데 밤에 무대에 오르는 게 싫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21세 정도였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김보연은 “그때 우리는 하룻밤에 5곳에서 놀았다. 이것이 우리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였습니다. 당시 현숙이는 9곳에서 뛰었다고 자랑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보연은 “그때 당시에는 전부 현찰로 돈을 줬는데, 세금을 내긴 내고 그 당시엔 증거가 없으니까 많이 띄워 먹었다. 요즘은 100% 다 넘어가니까 상상도 못할 일이다”라고 말했는데요.
당시는 짖궂은
손님이 많아서 “자, 여기 앉으세요. 하룻밤에 얼마예요?”라고 묻는 술취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옷을 찢고 머리를 자른 사람들을 붙잡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보연은 화를 내는 법이 없었고, 어렸을 때 비참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아 돈을 아끼기 위해 밤에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김보연은 사실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어쩐지 연기에 푹 빠졌다.
안양예고를 졸업한 김보연 씨가 제8회 MBC 공개 인재시험에 응시한다.
이 작품 이후 김수현 작가가 ‘너’라는 드라마를 시작했는데, 마음이 편해서 원래는 다른 반 친구들이 출연할 차례였죠.
하지만 김수현의 선생님은 ‘들장미’에 출연했던 막내딸이 자신의 직업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뜻밖에도 다시 드라마에 출연해 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김보연은 연기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김수현 작가를 꼽았다.
오늘날 김수현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속사포 대사’를 처음 시도한 연기자도 사실 김보연이었죠.
김수현 작가는 왜 김보연 같은 신입 배우에게 그 어려운 연기를 시켰을까요?
정확한 발음 똑 부러진 음성, 그것 말고도 김보연에겐 중요한 한 가지 재능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대개 배우들이 옛날 영화를 보면 나오는 그 특유의 말투를 이용한 연기톤으로 대사를 했죠.
그런데 김보연은 그게 너무 어색해서 그냥 평소 말하듯이 대사를 했는데, 그걸 김수현 작가가 눈여겨봤다고 합니다.
그 시절 카메라 감독들은 김보연이 연기를 하면 가끔 촬영을 멈추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해서 연기가 아니라 NG인 줄 알았다고 하죠.
김보연이 한창 스타로 떠오르던 시절 당시 여배우 세계에는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라는 트로이카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비롯한 당대의 여배우들이 연기한 것은 예쁜 얼굴을 강조한 멜로물이 대다수였는데요.
그녀는 청초한 여신이나 육감적 여인 대신 억척스러운 아낙네, 저능아, 야공주 같은 배역을 맡았죠.
짙은 화장 대신 몸빼바지를 입었고 김보연은 달랐습니다.
김보연은 머리가 희끗한 세대에게 ‘가수’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음반을 여섯 장이나 내고,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한 적도 있으니 과장된 기억이 아닌 것이죠.
김보연은 ‘이 밤을 즐겁게’라는 프로그램에 드라마 ‘당신’ 출연진들과 다 같이 나갔는데, 원래 노래를 부르기로 한 정혜선 선생님이 급한 일로 못 나오시게 됐다고 합니다.
레코드 회사 제의로 음반 취입하고 83년엔 돌아가신 박춘석 선생님과 함께 서울국제가요제에 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훗날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질 때도 ‘그 때문’ 아니냐며 수근거리는 사람들마저 있었다고 합니다.
mbc ‘기분 좋은 날’에 출연한 김보연이 연기 경력과 더불어 그간 자신을 괴롭히던 악성 루머와 스캔들에 대해 입을 열었는데요.
이날 김보연은 “당시 여배우들이 스타라는 소리를 들으면 꼭 재벌가와 정치가와 엮어 이상한 스캔들이 나는데 자신이 그 피해자 중 하나”라고 말했죠.
실제로 당시 김보연은 ‘재벌과 총수의 아이를 낳았다. 백화점을 받았다’ 등의 루머에 휩싸였고, 어린 나이였던 그녀는 악성 스캔들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녀는 1984년 부랴부랴 도피 유학을 떠났고, 1년 6개월 정도 유학 생활을 하며 건강을 되찾아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고통의
쉼없던 시절을 회상한 김보연은 “남자가 여자에게 백화점을 주는 게 미친 짓이다. “백화점 사서 사자”고 하면 “내가 사겠다”고 하더군요. ’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황당한 루머에 대해 유쾌하게 설명했다.
김보연 전성기 때 떠오른 소문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아이를 낳고 백화점을 물려받았다는 것인데, 당시 너무 걱정이 돼 유학을 위해 도망쳐 해외로 나갔다는 것이다. 얼마간. 1년 반.
또한 김보연의 친자 소송 등 악성 루머가 나오자 누리꾼들은 그녀를 공격했지만, 실제 주인공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전직 배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김보연은 “스캔들이 터지면 사실이 아닌데도 깨어나 사실이 된다”고 말했다. 서두른 이유는 스캔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결혼하면 스캔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결혼했다고 말했다. 부주의했던 첫 결혼의 아픔을 고백했다.
“어떤 백화점은 김보연 씨 것”이라는 소문을 많이 들었지만 그것은 온갖 악의적인 가십이었고, 특히 “그 백화점은 우리 엄마 것”이라는 딸의 농담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왼쪽.
김보연은 첫 남편과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이후 2001년 전노민과 결혼했으나 2012년 이혼했다.
그럼 김보연의
전 남편 전노민은 누군지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그는 나이 9살 연하 배우로 드라마 ‘나인’에서부터 ‘황금빛 내사랑’까지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인데요.
김보연은 이혼 후 돌아온 싱글이 된 그녀 곁을 지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는데, 딸 부잣집의 넷째 김보연과 돈독한 우애를 자랑하는 그녀의 자매들과 어머니 역시 9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게 곁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어 김보연의 딸 김은서, 김은조는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훌륭히 자라 어느덧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김보연은 자신이 할머니로 불리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김보연은 가족이 있기에 힘든 세월을 버틸 수 있었고, 혼자인 삶이 더 이상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나이든 여배우는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될 수 밖에 없다며 더 이상 설 자리가 많지 않다고도 고백했는데요.
그럼에도
김보연은 나이에 비해 젊은 외모로 중견배우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는 각오와, 꿈을 향한 열정이 여전히 남다르다고 한다. 십대의 마음과 똑같다.
김보연과 전노민이 이혼한 이유는 막걸리 사업의 실패로 인해 은행 빚 약 23억 원, 개인 부채 약 4억 원 등 막대한 빚이 쌓였기 때문이며, 전노민은 막걸리 사업 실패로 인해 막대한 빚을 지게 됐다. 최소한 그녀는 피해를 막기 위해 이혼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에서 직접적으로 그렇다고 언급했습니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받은 지 40년이 된 김보연은 부러운 삶을 살고 있는 화려한 미혼 여성이지만, 여전히 연기에 대한 욕심이 남아 있는 타고난 배우라고 한다.
김보연님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며,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