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가수 이은하.. 이제 어쩌나.. “밤 사이 전해진 눈물겨운 비보..” 어머니를 떠나보낸지 고작 1년만에…

2023년 1월 20일, 가수 이은하가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이은하 그녀는

어머니를 천국에 보낸 지 1년 만에 나도 아버지를 천국에 보냈습니다.

더욱이 가족과 함께 행복한 명절이 되어야 할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이은하는 아버지와 함께 명절을 보내려던 중, 아버지가 갑자기 사고를 당해 뜻밖에 설 연휴를 보내게 됐다.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잠긴 새해.

허리통증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던 아버지는 사망 전날 가벼운 걷기 운동으로 요양하러 나갔다가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큰 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했으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이은하의 유일한 가족인 이은하의 남동생은 “어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는 허리와 다리에 문제가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운동을 하며 재활에 힘썼다. 어제도 평소처럼 산책을 하다가 넘어졌습니다. 그는 “하루 뒤 그는 절망 속에 숨졌다”고 어젯밤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이은하는

“어머니도 넘어지신 지 사흘 만에 돌아가셨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버님마저 이렇게 가시니 가슴이 무너진다. 명절을 앞두고 좋지 않은 기별을 하게 되어 송구할 따름이다. 이제라도 두 분 하늘에서 편히 계시면 좋겠다”라며 선친의 명복을 기원했는데요.

빈소는 서울 성북구 뉴타운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지는 선대 부인과 같은 서울 추모공원에 마련될 예정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생전의 이은하를 가수로 키워내 한때는 딸을 행복하게도 만들었지만, 후에 여러 사건을 일으키며 딸의 인생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아버지이기도 했는데요.

이은하의 아버지는 유명한 아코디언 연주자로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직접 음악을 가르침 받게 됩니다.

그녀가 학교를 갔다 오면 다른 친구들은 다 뛰어노는데 자신은 매일 아버지와 노래 연습을 해야 했다고 하는데요.

그 영향을 받아 이은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나이트클럽에까지 나가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1973년 ‘님마중’이란 곡으로 데뷔하게 되는데, 당시 만 17세 미만은 방송 출연을 할 수가 없었고, 방송국에서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라고 하자 57년생인 언니의 등본을 내서 나이를 속여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녀는 나이를 들어 보이게 하려고 화장도 짙게 했으며, 심지어 당시 발육도 안 되어 있다 보니 가슴에 털실이나 천 조각을 넣고 다니며, 20대 아가씨처럼 위장하여 가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녀는

데뷔 당시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나중에 발표한 곡 ‘그래도 그대는 내 사랑’은 전대미문의 히트를 기록하며 이은하 시대를 영원히 열었습니다.

이은하는 쉰 목소리와 시원한 가창력으로 연예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후 애프터눈 티 타임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댄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를 당시 최고의 가수로 만들었던 노래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고 확고히 자리잡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최고 인기를 누리던 이은하에게 갑자기 시련이 닥쳤다.

당시 방송국도 소속사였기 때문에 사실상 이은하가 동양방송의 전속 가수였지만, 동양방송이 KBS와 강제 합병되자 하룻밤 사이에 소속사가 사라진 이은하가 가수의 전속 가수였다. 마지막 프로그램 이별 동양방송 방송 중 사고가 발생합니다.

고별 방송에서 ‘그래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부르던 그녀는 동양방송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참지 못했고, 목에 혹이 생겨 노래를 다 부르지 못했다.

 

생방송에서

노래를 다 부르지 못한 것 자체로도 큰 방송 사고나 다름없었던 데다가, 당시 신군부의 입장에서 이은하의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종인 것처럼 느껴졌고, 더군다나 당시 방송 출연진 모두가 미소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이를 불쾌하게 여긴 신군부는 이날 출연한 상당수의 연예인들을 출연 정지 처분으로 보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은하는 3개월간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게 되는데요.

원래는 바로 다음 날에 kbs에서 진행하는 방송 통합 기념 특집 프로의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출연 정지로 그 방송에서 이은하는 갑자기 제외가 되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출연이 재개된 후에는 보란 듯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겨울 장미’와 ‘바람에 구름 가듯’ 등의 노래를 연이어 히트시키게 되는데요.

그 덕에 이은하는 1982년 연예인 인기 순위에서 남궁옥분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이미자와 혜은이보다도 높은 순위에 오르기까지 하게 됩니다.

1982년 당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 1200만 원일 때 이은하가 종합소득으로 6천만 원을 신고하면서, 당시 연예인 종합소득 순위에서 전체 8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요.

‘밤차’, ‘아리송해’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7~80년대 ‘디스코의 여왕’으로 불리며, 이은하는 9년 연속 10대 가수상은 물론 가수왕도 세 번이나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던 이은하.

그런 그녀에게도 인생에서 딱 한 번의 사랑이 찾아오게 되는데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연하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결혼을 허락받으러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잿덜이를 던지며 그녀의 결혼을 극심하게 반대했고, 아버지는 ‘나야, 남자친구야. 선택해’라고 하시면서 눈이 돌아가서 흰 자만 보일 정도였는데, 남자친구는 무릎 꿇고 허락할 때까지 버틴다고 했지만, 이은하는 도저히 그 모습을 못 보겠기에 아버지 뜻대로 하겠다고 말했고, 결국 결혼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녀는 13살 때부터 노래하다 보니까 아버지 말이 사실상 법이 없고, 자신의 수입은 자신이 만져본 적이 없고 다 아버지가 관리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은하의 아버지는 ‘은아를 보낼 때가 됐구나’라고 느끼며, ‘언젠가 떠나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코디언 연주자였지 사업가가 아니었다 보니 계약서도 볼 줄 모르면서 준비 없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주변의 속삭임에 넘어가 보증을 서며 어음발행과 당좌 개설을 하며 모두 이은하의 이름으로 사인을 했는데, 90년도에 7억 원 정도의 빚이 생기며 이후 5층짜리 건물과 150평 집이 다 날아가게 됩니다.

 

부동산을

다 팔고 나머지 빚은 이은하가 다 감당해야 했는데요.

딸이기 때문에 아버지 빚을 책임질 의무는 사실 없었는데 그걸 그때는 알지 못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자기가 빚진 거니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하시다가, 아버지가 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들어가면 해결이 되는데, 혀 깨물고 죽을망정 안 들어간다고 이은하에게 모두 책임져라고 하시며, 그녀는 한순간에 모든 빚을 떠안게 됩니다.

그때 아버지가 빌린 돈은 대부분이 사채 빚이어서 원금 7억이 이자 때문에 점점 크게 불어나게 되었고, 설상가상 사채 측에서 ‘이자를 안 주면 방송국에 폭로한다’ 등 협박까지 당하게 되는데요.

1990년대 초반에 20억 원에 달하는 빚이 생기게 되면서, 이은하는 매일 빚을 갚아야 하는 지옥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녀는 매일 밤 무대까지 가리지 않고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지만, 그렇게 벌어도 한계가 있어서 다른 곳에 빚을 얻어 빚을 해결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열심히 일해 결국 아버지의 20억을 모두 갚게 되었지만 후에 2015년에 다시 아버지로 인해 생긴 사채 빚이 50억 원에 달하게 되면서, 이은하는 결국 파산 선고를 받아 면책 절차까지 진행하게 됩니다.

‘죽음을 위해 수면제까지 먹어보았지만, 3일 만에 잘 깨어나더라’라고 말하며 ‘죽는 것도 쉽게 되지 않았다’라는 이은하.

이렇게 지내게 되면서 결국 그녀는 건강이 크게 상하게 되는데요.

빚을 갚기 위해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스케줄을 이어갔지만, 결국 크게 누적이 되고 호르몬도 변화하더니 쿠싱증후군이란 병이 생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은하의 체중은 무려 30 킬로나 증가하게 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유방암으로 투병하며 수술까지 받은 사실이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은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를 용서했다”라며 “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저렇게 눈가에 주름이 지고 눈 뜨기도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그냥 서글픈 마음뿐”이라며 아픔을 털어놓게 됩니다.

 

그녀는

그는 과거를 회상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네가 힘든 일을 겪으면 주변 사람들도 더 힘들 것 같아서 버텼고, 버티니까 더 인내심이 생겼다.”

그는 “사실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늘 극복해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습니다. 알고 보니 암 1.5기였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나아져서 정말 다행이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들이 나를 보고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직업은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몸이 아파도 노래도 잘하고 열심히 웃으며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공개되었습니다.

가수 이은하 씨는 비록 아프지만 생활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힘차게 노래할 것이라고 밝히며 그때까지 모두 건강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수가 된 것부터 힘든 삶,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것까지 모두 어찌 보면 아버지 때문이고, 스스로는 아니더라도 아버지와 함께 살아간다.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와 희망.

돌아가신 이은하 아버지께서 세상 모든 일을 잊으시고 천국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며, 힘든 삶을 살아온 가수 이은하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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