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레슬링 레전드 52세 심권호 결국…” 몰라보게 변해버린 그의 최근 모습에 모두가 오열하게된 안타까운 이유..

여러분은 대한민국에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남긴 종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폐막 네 시간 전, 감격에 찬 아나운서가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한국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라고 하며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은 바로 레슬링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양정모 선수를 시작으로 이후 레슬링은 꾸준히 금메달을 따며 한국에 있어 효자 노릇을 했고, 그리고 금메달을 획득한 많은 레슬링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은 거인’ 심권호 선수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일하게 두 개의 다른 체급에서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을 모두 우승한 사람으로, 그야말로 레전드이자 박장순과 함께 세계 레슬링 연맹 명예의 전당 150인에 헌액된 유일한 한국인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랬던 국민 영웅이 레슬링의 내부로부터 ‘그 정도나 했으면 이제 후배에게 좀 양보하지?’라는 영향을 받고 결국 믿었던 동생과 여자에게 배신을 당해 건강검진 결과 현재 뇌와 간이 많이 망가져 이후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심권호의 눈물 나는 인생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1972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난 심권호는 어릴 적에 엄청난 개구쟁이로 매일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 뒹굴고 놀다가 일명 ‘쫄쫄이’를 입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하루는 평소처럼 친구들과 장난치며 노는데 자꾸 날래면서 운동 신경이 빠른 그를 눈여겨보던 체육 선생님이 그를 조용히 부르더니, ‘레슬링을 하지 않겠냐’라고 권유하게 됩니다.

당시 안 하겠다고는 할 수 없어서 시키는 대로 해봤는데,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재미있어서 레슬링은 그의 길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넘쳐나는 에너지로 동네방네 뛰어다녔던 꾀 많은 장난꾸러기는 매트 위 원 안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89년 경기도의 소년체전 사상 첫 레슬링 금메달을 안기며 선수로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이후 고등학교 때는 1년 동안 열리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전관왕을 차지하며 큰 두각을 나타냈고, 그러다 1992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신의 체급인 48kg 부문에서 우승같이 차지하며 마침내 첫 올림픽 무대를 밟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체육계가 워낙에 파벌이나 비리가 많다 보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국제대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선수에게 밀려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굉장한 억울한 일을 당해야만 했죠.

 

 

그런데 그 다른 선수가 정말 어이없게도 예선에서 탈락해버리자 결국 이때부터 심권호가 그 자리를 밀어내고 국가 대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되자마자 세계선수권 동메달로 자신의 이름 알린 후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95년 세계선수권 금메달, 96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며 일찌감치 96년 에틸렌타 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대진이 최악으로 걸려 2회전부터 라이벌인 러시아 선수를 만나야 했고, 그럼에도 연장 접전 끝에 2 대 1로 승리한 후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위기 없이 결승까지 올라가 연장 접종 그때 4 대 0 으로 승리하면서 마침내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됩니다.

당시 그가 따낸 금메달은 한국의 올림픽에서 100번째 획득한 금메달이자, 에틀렌타 올림픽 첫 금메달이다 보니 그는 더욱 주목받게 되었고, 그리고 금메달을 딴 순간 ‘내가 진짜 세계 일등이다’라는 생각과 ‘진정한 챔피언’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사람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 부르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리고 워낙 압도적인 기술과 경기 운영을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순항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건 바로

그가 출전하던 최경량급 48kg급이 에틀란타 올림픽을 끝으로 폐지가 되면서 결국 이 급의 선수들이 99%가 은퇴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그래서 사람들이 ‘심권호도 이제 끝이다’라는 얘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길 “세계 레슬링 연맹에서 그전까지 없었던 여자 레슬링을 만들기 위해 남자 레슬링의 체급 조정을 한다며 48킬로 급을 없애고 말았다. 그런데 여자 레슬링은 핑계고, 당시 경량급에서는 아시아 선수들이 유독 두각을 드러내다 보니 사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없앤 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이때 1996년 에틀렌타 올림픽에 출전했던 48kg급 선수들이 100명 중 99명이 은퇴했고, 나 역시 깊은 고민에 빠져 한동안 힘들어하다가 결국 54kg 급에 출전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체중을 한 번에 6kg를 불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먹어서 불리는 체중이 아니라 순수 근육만 6kg를 늘려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한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졌었다”

 

아무튼

그는 모두가 안 될 거라고 예상했던 54kg급 체급에서 놀랍게도 서서히 적응하더니, 결국 이 체급에서도 절대 강자로 부상했고 그러다 후배인 하태연과의 치열한 승부 끝에 또다시 국가 대표가 되면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출전 선수에 선발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금메달을 땀으로써 서로 다른 두 개의 경량급 체급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전대후무한 위업을 달성했고, 그리고 이 올림픽을 끝으로 모든 것을 다 이뤘다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한편, 그는 그동안 운동만 하느라 연애를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올림픽 2연패 후 관심을 보이는 여성들이 부쩍 늘어나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이때가 본인의 인생 중 가장 많은 여자들이 다가왔섰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심을 갖는 여성들이 나타나면 ‘날 왜 좋아할까?’, ‘내가 금메달 따고 잘나가니까 가지고 놀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하다 보니 결국 그게 독이 되어 지금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의 나이 29살 때는 괜찮은 여자를 만나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주고자 결심했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더니, 곧바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 버리는 황당한 배신을 당하면서 결국 이 연애가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연애가 되고 말 알았습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이성 교제에 있어 더욱 조심스러워지게 되었고, 그런데 이성과 관련해 또 안타까운 게 한 번은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당시 굉장히 친하게 지내던 동생으로부터 농락을 당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당시

그 동생은 피로연에서 ‘자기가 아끼는 여자 후배인데, 잘 좀 해주라’라며 한 여자를 소개해 주었고, 그래서 그가 말도 붙이고 진심으로 대해줬는데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심권호가 그 여자를 쫓는 스토커다’라는 소문이 나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친했던 동생이 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소문을 낸 범인이었고, 결국 이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이후부터는 주변에서 소개해 준다고 해도 한동안은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올림픽 이후 모든 것을 다 이뤘다면서 은퇴를 했던 그는 잠시 코치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본인의 실력이라면 아직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하에 결국 다시 선수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전무후무한 올림픽 레슬링 3연패를 이뤄내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고, 그리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결승전까지 오르며 그의 목표가 조금씩 현실화가 되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을 받아 결국 패하고 말았고, 그리고 당시 선발전 영상을 보면 일반인들도 이상하다 느낄 정도로 억울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걸 넘어서서 담담하게 다 받아들이고 어쨌든 올림픽 3연패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최후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진짜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한편, 이와 관련해 협회와 한국 레슬링계 내부에서는 ‘그 정도나 했으면 이제 후배에게 좀 양보하지’라는 심리가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리고 심권호 그도 당시 자신은 안현수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전에서 떨어져 선수로서는 은퇴했지만, 은퇴 선언과 동시에 레전드인 글을 해설자로 섭외하려는 방송사들의 러브콜이 쉐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SBS를 선택해 선수에서 해설자로 데뷔하게 되는데, 하지만 사실 해설이라는 게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준비를 하고 해야 하는데, 그는 단 며칠 만에 해설자로 변신하다 보니 그의 해설을 두고 굉장히 많은 논란들이 쏟아지게 됩니다.

당시 그는 경기를 분석하고 전달하기보다 상황에 맞춰 같이 흥분하며 본인이 마치 코치인 마냥 선수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한 해설을 했고, 그리고 이때 한국 방송사 중계진들의 자리가 붙어 있었는데, 그의 목소리가 워낙 컸다 보니 방송 3사 모두에서 심권호 목소리가 섞여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4년 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그의 해설 방식이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당시 그는 ‘야이 바보야’를 비롯한 정제되지 않은 멘토들로 많은 비판을 받고, 결국 이로 인해 공개적으로 사과 방송도 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그는 입담도 좋고. 예능감도 있는 데다 해설도 잘하는 편이었지만, 흥분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해설도 이때를 마지막으로 그만두고 말았고, 그래도 말주변도 좋고 레슬링계의 전설이기 때문에 예능 프로에 자주 출연하더니, 당시 코치로도 활동하긴 했지만, 사실 방송에서 더욱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코치를 관두고 대신 일반 직장인이 되어 회사 생활을 하게 되는데 한편, 평생 운동만 했던 그가 직장인이 될 수 있었던 건 현역 시절 주택 공사의 소속 선수로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후부터는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신도시 보상팀 팀장을 맡았는데 그런데 유명한 레슬러가 보상을 담당해서 그런지 험한 보상팀 임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마찰이 없었고 오히려 보상 논의를 위해 험악하게 기다리고 있던 입주자들도 심권호가 나타나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술 한잔하며 좋게 마무리가 되곤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사람 좋은 선한 인상으로 방송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런데 2017년 ‘남남북녀’에 출연할 당시 놀랍게도 그가 현재 알코올 의존증 수준으로 뇌와 간이 많이 망가졌다는 충격적인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됩니다.

당시 그는 술을 자주 마시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고백하길 “여자 때문이다. 나는 늘 여자한테 다 차였고, 그리고 내 주위에는 나보다 다 키 크고 잘생긴 애들이다 보니 그때부터 뭔가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주도 없이 술을 먹는 이유는 빨리 먹고 취해서 자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그럼 뭘 잊어버리기 위해서 술을 드시냐’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길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다. 내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무리에서 나와 혼자가 되면 더욱 극심한 외로움이 몰려든다. 그 외로움은 사실 운동 시작할 때부터 느꼈다. 또한 나의 레슬링 실력이 너무 부각이 되니까. “이걸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기려고 노력하고 나는 모든 사람들을 다 이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속에서 혼자 싸우고 버텨야 했다. 하지만 이런 외로움을 부모님한테도 동생한테도 누구한테도 전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결국 술을 먹었다. 그리고 술을 먹더라도 혼자 조용히 먹고 그냥 자리에서 자야 했기 때문에 혼자 마시는 술로 진한 외로움을 풀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체육관 운영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하필 전염병이 터지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고, 결국 이후 할 일을 찾지 못해 앞서 얘기한 대로 혼자서 외로운 나날을 술로 달래며 살다가 한때는 저질 체력이 되기도 했는데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 술을 끊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무렵 그가 ‘뭉쳐야 산다’에서 돌연 하차하면서 앞서 ‘남남북녀’에서 고백한 사연과 더불어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는데, 그건 바로 그가 생각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길 “사실 혼자 있고 할 게 없고 그러니까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면서 그런 이유로 술을 좀 마시긴 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금방 저질 체력이 되더라 결국 이건 아니다. 싶어 그날로 술을 끊고 운동을 하며 몸 관리를 하고 있다. 어쨌든 술을 마시긴 마시지만 적당히 마시는데 내가 술없이 못 샀느니 ‘중독이 아니냐’ 하는 소문은 정말 어이가 없다. 나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술 끊은 지 꽤 됐다. 나 진짜 어디 돌아다니면서 술은 안 마신다. 행여 술을 먹더라도 내가 아는 사람하고만 술 마신다. 걔들하고 술 마실 때도 나는 멀쩡한데, 그런데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소문이 이상하게 났다. 날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들이 소문을 부풀리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고독히 홀로 운동하면서 받아왔을 스트레스가 얼마나 깊을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방송에 나와 시청자들에게 웃음 다시 건넸으면 좋겠습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