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생 배우 강남길 다시금…” 최근 악화된 그의 건강 상태 그리고 병상에서 그가 자녀들에게 보인 충격 모습을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강남길은 1958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강남길 그는 30살이

다 되어서야 ‘한지붕 새가족’으로 이름을 알린 늦깎이 스타였지만, 이후 ‘베스트 극장 달수 시리즈’의 서민 직장인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각종 예능 프로에서까지 맹활약했고, 한양대 영문과를 나와 드라마를 한번 촬영하면 대본도 통째로 외우는 머리가 똑똑한 대기만성 배우였는데요.

게다가 90년대 후반에는 ‘강남길의 티비보다 쉬운 컴퓨터’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서적까지 낼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고, 그 책이 50만 부나 팔렸을 정도로 그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강남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데 바로 고작 40대 초반에 급성 심근경색이 온 것이었는데요.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이 왔지만 골든타임은 고작 3분, 그렇게 사경을 헤매던 강남길은 119가 빠르게 와준 덕분에 겨우 고비를 넘기며 투병을 이어가게 됩니다.

더군다나 몸도 아픈데 아내마저 간통 사건에 연루되면서 강남길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데요.

사건의 시작은 아내 홍영희의 자동차였습니다.

어느 날, 자동차를 운행 중이던 홍영희는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고 맙니다.

홍영희가 정비를 할 줄 몰라 난감함에 빠져 있을 때, 기아 자동차 영업사원 장 씨가 나타나는데요.

 

홍영희보다

6살 연하의 이혼남이었던 장 씨는 자동차 회사 사원답게 그녀의 차를 말끔히 고쳐주게 되었고, 이후 이들은 외곽 카페에서 차를 몇 번 마시게 됩니다.

이후 이들의 만남은 애정행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데, 당시 강남길과 잉꼬부부의 컨셉으로 예능 프로의 얼굴이 알려졌던 홍영희는 비밀리에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곳이 남양주시 금남리 소재의 한 호텔이었는데요.

 

 

이곳에서 이들은 몇 개월을 두고 장기 투숙까지 하며 정을 통하게 됩니다.

하지만, 강남길은 아내의 외도 사건이 세상에 불거지기 3개월 전부터 우연한 계기로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는데요.

강남길은 심근경색 이후 몸이 안 좋아 일찍 자는 습관이 생겼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눈을 떴지만 아내는 없었고 화장실에 갔다가 아내의 수첩을 보게 됩니다.

그 수첩에 적혀 있던 내용은 강남길에게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는데요.

수첩에는 아내의 외도 행적과 연애편지가 담겨 있었는데, 내연남과 호텔에 간 날도 암호로 적혀 있었습니다.

 

이후

강남길은 수첩 내용을 스캔해서 확실한 물증을 가지고 추궁을 했고, 아내는 발뺌을 하다가 끝내 실토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홍영희의 내연남은 장 씨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홍영희는 강남길 부부와 친하게 지내던 부부의 아들과도 불륜 행각을 벌이다 역시 강남길에게 발각되고 마는데요.

강남길은 두 번째 내연남이 지인의 아들이었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나, 아이들을 생각해 묻어 두려고 했고 오히려 본인이 일만 하느라 아내의 외로움을 몰라줬던 자신을 탓하며 두 사람에게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그냥 불륜을 덮어 두려 하게 됩니다.

하지만, 홍영희는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8톤 트럭과도 같았던 것일까요?

남편의 용서를 천운으로 생각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싹싹 들어도 모자랄 판에, 그녀가 이후에도 수상한 외출을 이어나가자 결국 강남길은 친동생에게 그녀를 미행할 것을 지시하게 되는데요.

 

 

기회를 엿보던 강남길의 친형과 동생, 누나 등은 합동으로 홍영희와 장 씨를 은밀히 미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금남리 호텔에 투숙하는 둘을 확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을 통하는 현장을 급습하게 되는데요.

시댁 가족들 앞에서 상반신이 노출된 채 불륜 행각을 벌이던 장면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증거물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내연남 장 씨와 가족들 간에는 난투극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이웃 친동생의 폭력을 정당화하려면 홍영희를 간통죄로 고소할 수밖에 없다는 경찰 자문을 받은 강남길은 그렇게 고소와 이혼 절차를 밟게 됐고, 홍영이와 장 씨는 구속되게 되는데요.

이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사죄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치장에 있는 동안 상당한 친밀감을 보였다고 합니다.

5일 동안 유치장에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위로를 하는 등 친숙함을 보였고, 식사는 물론 서로를 아껴주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고 하는데요.

이후 홍영희는 일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를 통해 징역 10개월로 감형이 되게 됩니다.

더구나 이 사건으로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강남길의 어머니였는데요.

 

 

강남길의 어머니 최정순 씨는 자식들을 통해 강남길의 상황에 대해 듣고는 있었지만, 이미 70을 넘긴 고령이라 자세한 내막은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병인 협심증으로 입원하던 중 병원에서 누군가가 보던 잡지를 보다 아들의 기사를 그만 읽게 되는데요.

기사를 보고 눈물을 흘리던 최 씨는 며느리들에게 “지금 내 통장에 3000만 원이 있는데, 이것으로 재판 비용에 써라”, “그리고 남길이와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해 주라”라고 당부한 후 강남길에게 전화를 해 “엄마의 유언이니 지금이라도 당장 입원을 하고 수술하라”라고 30여 분간 타이른 직후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진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게 됩니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강남길은 몸도 아픈 상황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까지 휩싸이게 되는데요.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강남길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북한산으로 올라 낭떠러지 앞에까지 서게 되는데, 그때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선배 전원주의 눈에 띄어 사망을 면하게 됩니다.

전원주는 평소 자주 가던 북한산에서 낭떠러지 부근에 어떤 남자가 있는 걸 발견하고, ‘위험하니 그곳에 있지 말라’라며 남자를 부르게 되는데요.

그런데 가까이 보니 그 남자는 바로 후배 강남길이었는데,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던 강남길은 전원주를 보자마자 서럽도록 흐느끼며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홍영희의 외도는 당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강남길의 딸 나리 양과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들 경완 군까지 크게 상심한 나머지 집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게 되는 등 가족들 전체를 풍비박산으로 몰고 갔는데요.

 

특히

사춘기였던 딸 나리 양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당시 강남길은 “아이들이 친구는 만나고 싶어 하지만 밖에 나가는 것은 꺼린다”라며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준비하게 되는데요.

후에 동료 이성미가 밝히길 “공항에서 남길 오빠한테 연락이 왔다”라며 “미국을 가려는데 안 좋은 소식에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그래서 미국으로 가면 아이들에게 영향이 갈 것 같다고 하길래 내가 영국을 추천해 줬다”라며 강남길은 교민의 수가 적은 영국으로 출국지를 급히 바꾸게 됩니다.

영국으로 떠난 강남길과 아이들 하지만 거기서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교민이 없으니 아이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또래 한국 애들이 없으니 학교에 적응을 못 하고 겉돌았던 것인데요.

그래서 결국 영국 안에서도 거주지를 다른 도시로 한 번 더 옮기게 되는데, 특히 둘째 경완 군이 타국에서 적응을 못 하고 힘들어하는 바람에 강남길은 아이들의 유학지를 같은 동양권인 일본으로 옮길까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게다가

강남길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큰딸의 초경이었는데, 아이에게 엄마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주변 아주머니들한테 물어 딸에게 꽃과 케이크를 선물하며 축하한다고 했더니, 아이가 깜짝 놀라게 되는데요.

그 꽃과 케이크를 준비하던 아빠 강남길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고 딸에게 미안했을까요?

그렇게 그는 아이들이 적응을 못 하고 힘들어할까 봐 방송 활동을 하러 귀국도 못하고, 내내 영국에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엄마 역할까지 1인 2역으로 밥도 해 주고 빨래도 하는 생활을 이어가게 되는데요.

하지만, 두 아이의 학비와 생활비로 1년에 들어가는 돈이 1억 원 이상이라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리게 된 그는 가진 재산이라고는 전처와 살던 목동의 40평 아파트가 전부였는데, 그 집도 당시 전세를 내준 상황이었고 게다가 전처 홍영희는 이혼을 하며 재산분할 청구소송까지 한끝에 강남길로부터 1억 7000만 원까지 빼앗아 간 상태였습니다.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재산까지 갈취해간 그 독한 홍영희는 후에 그 돈으로 서울에 옷 가게를 차리게 되는데요.

결국, 배운 게 연기뿐이었던 강남길은 어린아이들을 두고 4년 만에 국내로 복귀해 이후 닥치는 대로 쉬지 않고 드라마에 출연해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배우로

재기해서 몸을 불살랐던 그는 이후 아이들을 데리러 영국에 갔다가 그곳에서 지인들을 접대하기 위해 골프 한 게임을 치게 되는데요.

당시 함께 치던 한 지인이 삶은 달걀을 싸 왔는데 강남길은 마침 출출했던 차에 한 입 먹고 스윙을 했다가 그만 먹은 게 얹히더니,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그만 쓰러지게 됩니다.

당시 그는 위에 실 핏줄이 전부 터지며 다시 한번 긴급히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는데요.

그는 문병 온 아이들 앞에서 대량의 피까지 토하게 되자 정신이 점점 혼미해졌고, 결국 ‘이제 내가 죽는구나 싶어’ 긴급히 아이들에게 유언을 남기게 됩니다.

“나는 빚이 없고, 누구누구한테 받을 돈이 있다. 그리고 책상 아래에 비상금이 있다” 등등의 유언을 남기자 생사를 넘나드는 아빠를 향해 아이들은 울부짖게 되는데요.

후에 하늘이 도와 천만다행으로 조금 회복한 강남길은 한국에 와서 병원을 다시 갔다가 의사가 ‘위가 정말 안 좋다’라며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한다’라며 그에게 경고를 하게 됩니다.

 

게다가

얼마 전 또 위에 문제가 생겨 다 쏟아내며 그는 또 한 번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고비를 넘긴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인생의 큰 아픔을 겪은 것도 모자라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기며 건강마저 악화되고 있는 강남길.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던 드라마에서도 그는 2019년 이후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상의 기적이 있다면 그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브라운관에 복귀할 수 있게 되기를 빌며,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온 배우 강남길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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